'메이플스토리' 속 희생 당한 몬스터를 위한 씻김굿

 

보더리스 공모전 결선 진출팀 '현대연희prototype21' 인터뷰

 

결선에 진출한 세 팀 중 첫 번째로 '현대연희 prototype21’을 만나보았다. 게임 속에서 희생 당한 몬스터를 위한 ‘씻김굿’이라는 공연을 제시해 심사위원과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팀이다. ‘메이플 스토리’ 유저 그 자체인 MZ세대들로 구성되어있어 결선 진출팀 중에 가장 평균 연령이 낮은 팀이기도 하다. 인터뷰에는 조정현 대표를 비롯 이동현님, 손경빈님, 정도윤님, 윤승비님 등이 참석하였다.

> 팀 이름 : 현대연희 prototype21

> 작품명 : 검은 보따리

> 활용 IP : 메이플스토리

> 팀원 : 조졍현 (전통연희) 윤승비 (무대예술) 이동현 (전통연희) 정도윤 (전통연희) 손경빈 (영상) 우하정 (전통음악) 정길우 (연출)

 

‘현대연희prototype21’이란 팀의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요

 

조정현 저희는 전통 연희를 기반으로 창작을 하고 있는 팀입니다. ‘전통 연희’라는 말은 과거에, 그리고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연희 예술이라는 뜻입니다. 저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가 아니라, 현재부터 미래까지 통용되는 연희 예술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현대 연희’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프로토타입’은 제품을 출하하기 전 마지막 단계를 말해요. 디자인이나 개발 과정에서 찾아낸 내용을 실제 구현해보는 단계지요. 저희도 제품을 생산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관객이 선호하는 공연을 만들고자 해서 ‘prototype’이라는 말을 덧붙여보았습니다. ’21’은 2021년을 의미해요. ‘현재’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전통예술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향유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전통예술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향유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라는 기획의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 하신 팀명의 의미와도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대연희prototype21’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였나요?

 

 

조정현 윤승비님은 저희 무대 디자인, 의상, 소품까지 무대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담당해주시는 예술가분이시고요, 손경빈님은 공연에 사용되는 영상 전반을 담당해주고 계십니다. 우하정님은 음악을 당당해주실 거에요. 정도윤님, 이동현님, 저까지 세 사람은 실연하는 연희자의 역할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통예술과 영상, 무대디자인은 분업화되어있어서 서로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다행히 영상 분야 예술가분 중에 전통예술에 관심이 많은 분을 만나게 되었고, 전통적인 양식에 관심이 많은 무대 예술가분이 함께 해주시기로 하셔서 팀을 어렵지 않게 꾸릴 수 있었습니다.

 

팀에 전통예술이 아닌 다른 계통의 분들도 계시는 거군요.

 

조정현 네, 미술, 영상 담당하는 분과 최근에 합류한 연출 님이 전통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세요.

 

저희가 보더리스 공모전을 시작하고, 첫번째 공모전으로 게임과 전통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정했어요. 넥슨에서 이런 공모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조정현  정도윤님과 이동현님께서 콘텐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두 분이 말씀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도윤 지금까지 저희가 접했던 공모전은 전통 예술 만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게임을 어떻게 하면 전통 예술 안에 녹여낼 수 있을까’, ‘가상에 있는 게임을 전통 예술 공연물로 올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실제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게임인 ‘메이플스토리’를 떠올리게 되었고요. 메이플스토리의 대표적인 몬스터인 ‘슬라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몬스터는 캐릭터 육성을 위해 매번 죽고 희생 당하는 안타까운 존재잖아요. 그 몬스터들을 위한 굿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기획서를 처음 보고 ‘몬스터를 위한 씻김굿’이라는 발상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어요. ‘몬스터를 죽이며 죄책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이런 신선한 발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정도윤 메이플스토리를 하면서 몬스터를 죽여서 죄책감이 든 적은 없어요. (웃음) 다만, 이런 생각의 단초가 된 사건이 있다면 2010년 여름에 있었던 ‘빅뱅 패치’인 것 같아요. 메이플스토리 빅뱅 패치가 있기 전에는 주황버섯, 슬라임 이런 몬스터들의 경우 엄청 어렵게 잡았던 캐릭터들이거든요. 빅뱅 패치 후에는 한방에 쉽게 죽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때의 저희가 느꼈던 감정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2차 심사 때 심사위원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질문을 하셨어요.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씻김굿’이 관객들에게 어둡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하기도 했죠. 관객들에게 씻김굿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조정현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인 진도씻김굿에 중요무형문화재 제 81호인 진도다시래기를 함께 공연할 예정이에요. 씻김굿은 기본적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현장에서 연행되기 때문에 어쨌건 슬픔 없이는 진행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울하고 어둡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저희는 ‘씻김굿’에 ‘다시래기’라는 공연을 더할 예정이에요. ’다시래기’는 재생을 의미하는 ‘다시나기’ 같이 즐긴다는 ‘다시락’ 망자가 떠나는 시간을 기다린다는 '다시래기'의 의미를 가진 밤샘 놀이에요. 놀이와 같은 공연을 통해 상주를 놀리기도 하고 장기자랑을 하기도 하죠. ‘죽어서 슬퍼’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은 영혼이 슬프지 않게 천도하고 위로하고, 죽음이 있으면 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걸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니 씻김굿이 곧, 장례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죽은자를 위로하는 건 정말 한 부분일 뿐이지 그게 전부는 아니고요. 어렵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엄청 슬프고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슬프고 어두운 느낌의 공연이 아니라 다른 분위기로 공연을 준비하고 계신건가요?

 

조정현 네, 그렇죠. 사실 게임 속 몬스터가 죽는다고 너무 슬프고, 막 오열하고, 영정사진 붙잡고 울고 있는 건 좀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부분이지요. 관객들도 슬프다는 감정은 잘 안들거 같아요. 슬픔보다도 ‘무분별한 살생, 사냥 활동을 멈춰야한다.’는 관점으로 한번 바라 보자는 거죠. 게임 캐릭터든 식물이든 생명체든 뭐든 하나하나에 다 존엄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 컴퓨터 그래픽일 뿐이라도 차별화하면 안된다 하는 이야기를 담게 될 것 같습니다.

 

‘검은 보따리’ 기획을 보며 몬스터에 감정이입을 하기도 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 캐릭터를 넘어 실제로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조정현 네. 그렇습니다.

 

'현대연희 prototype21' 팀이 참여한 '박첨지 증후군'

 

2차 심사에 참여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조정현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특히 게임 분야 심사위원들이 전통 예술 분야의 시각에서는 볼 수 없던 부분들을 언급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연희자의 입장에서, 영상이나 무대 등을 함께 해주실 전문가 분들에게 어떤 걸 요청해야할지 감이 잡히기도 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피드백이 도움이 되었나요?

 

조정현 비주얼적인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주신 부분이 기억나요. ‘메이플 스토리의 캐릭터와 몬스터가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귀여운데, 씻김굿은 어둡지 않냐, 어울리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질문을 받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무대 예술을 담당하는 윤승비님이 그려주신 스케치 한 장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가능하더라고요. 귀여운 캐릭터들이 그대로 등장하지 않아서 게임처럼 아기자기한 느낌은 아니겠지만, 비주얼에서 게임에 밀리지 않을 것 같아요. 관련 고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무대예술 담당하는 윤승비 님이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아기자기한 게임 캐릭터와 씻김굿의 정서를 어떻게 같이 보여주실 예정인가요?

 

윤승비 제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연출가 정길우님을 소개해서 저희 팀에 함께하게 되었어요. 정길우님은 메이플스토리 유저이기도 해요. 게임에도 서사가 있잖아요. 그 세계관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판타지가 펼쳐지는 거죠. 연출가께서 메이플 스토리가 크게 변했던 시점에 대지진도 일어나고, 생태계도 바뀌면서 슬라임들이 많이 죽었던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거기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잘 엮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누며 무대와 의상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었어요. 연출가 뿐 아니라 저희 팀원들은 다들 메이플 스토리 유저이고, MZ세대 그 자체에요.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있고요. 슬라임이라는 캐릭터를 저희 방식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각각 대표적인 컬러가 있고, 방울이 달려있다거나 하는 등 특징이 확실해서, 그 부분을 시각적으로 살리면 충분히 잘 표현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뮤지컬 ‘라이온킹’을 본 적이 있어요. 공연을 보면서 '어, 나도 이거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라이온킹처럼 미술이 많은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무대를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던 저에게, 이런 창작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반갑고 무척 뜻 깊습니다.

 

슬라임 의상 구성안 (제공 : 현대연희 prototype21)

 

쇼케이스 준비는 잘 되어가시나요?

 

조정현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있고요, 11,12월 중에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서 쇼케이스 직전까지 달려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통예술 공연장에 처음 오는 관객들이 많은 공연이 될 거에요.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조정현 리그오브레전드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공연을 진행했을 때 대형 아이돌 콘서트만큼 빨리 매진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공연 관련해서 굿즈 같은 파생 상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그만큼 게임은 영향력이 있어요. 저희가 이번 기회를 통해 넥슨 IP를 활용할 수 있게 된 만큼 1차원적으로 공연 하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걸 시도해보고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공연을 보게될 게임 유저들은 ‘전통 예술도 올드하지 않고 신선하다, 꽤 재밌네’ 하는 감정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메이플스토리에 향수를 가진 분들도 많이 찾아오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상 쪽에서도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요.

 

손경빈 굿을 주제로 여러 번 공연을 했었어요. 제 생각에 굿과 게임의 공통점은 ‘환상의 세계’라는 것 같아요. 게임이 가상의 세계인 것처럼 굿도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의식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영상이 가상의 환상 세계를 보여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이동현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이런 게임 저런 게임 많이 하고 있어요.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랑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전통 예술이라는 장르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만났으니까요, 둘 사이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분야에도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눈을 뜰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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